《도둑맞곤 못살아》(2007)는 소지섭의 이미지 변신이 유독 인상적인 작품이다. 감성 멜로나 액션 장르에서 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뜻밖의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현대인의 허무와 무기력, 그리고 비틀린 소망을 희화화한 작품이다. 흥행은 미미했지만, 2024년 지금 다시 보면 이 작품이 전달하려던 의미와 소지섭의 파격적 선택이 얼마나 신선했는지 재평가하게 된다.
1. 소지섭의 파격적 이미지 탈피: 냉소와 허무의 얼굴
소지섭은 이 영화에서 무기력하고 냉소적인 도둑 ‘진혁’ 역을 맡았다. 그는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다소 지루하고 우울한 기운을 품은 인물이다. 돈이 필요해서 도둑질을 하지만, 열정도 목표도 없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범죄마저도 마치 루틴처럼 해치운다. 이런 진혁의 캐릭터는 소지섭에게 연기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는 ‘멋진 남자’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중심이었다면, 《도둑맞곤 못살아》에서는 무표정 속에 웃음을 주는 인물, 즉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연기를 시도했다. 진혁은 극 중에서 반복적으로 "잡아봐, 잡을 수 있으면" 같은 말을 하며 현실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러한 대사는 마치 현대인의 무기력한 일상과 맞물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다시 보면 이 캐릭터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고 흘러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2. 박상면의 집요한 열정: 코믹함 속 비극적 초조함
진혁과 대립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박상면이 연기한 보험회사 직원 ‘재필’이다. 도둑에게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그는, 보상을 받기 위해 진혁을 끝까지 추적한다. 이 캐릭터는 엉뚱하고 어설픈 행동을 반복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주지만, 그 밑바탕에는 절박함과 분노, 무력함이 뒤섞여 있다. 박상면은 특유의 생활 연기로 이 인물을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는 법과 질서보다는 자신의 정의감과 억울함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의 집요함은 점차 집착으로 바뀌고, 진혁을 쫓는 그 과정은 점차 우스꽝스럽지만 애처롭게 변해간다. 두 인물 간의 추격은 일반적인 범죄 영화처럼 치열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무게에 눌린 두 남자가 서로에게 집착하는 심리극처럼 느껴진다.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그 안에는 씁쓸한 감정이 깔려 있다. ‘도둑질’과 ‘보험사기’라는 소재 속에서, 현대사회의 윤리와 불신, 개인의 무력함과 분노가 교차한다.
3. 코믹 범죄극을 빙자한 현대인의 자화상
《도둑맞곤 못살아》는 첫인상은 코믹하다. 소지섭의 무표정한 도둑과 박상면의 좌충우돌 추격극, 코믹한 배경음악과 황당한 상황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관객은 묘한 여운에 빠진다. 이 영화는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도둑맞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출 방식 또한 과장되지 않고, 리얼리즘에 가깝게 진행된다. 극적인 액션이나 빠른 전개보다는, 지루할 만큼 일상적인 도둑과 추적이 반복된다. 이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관객은 "내 삶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며,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자조적인 감정에 젖게 된다. 감독 이영재는 이 작품을 통해 코미디 장르 안에 묵직한 메시지를 심었다.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바꾸지 못하고, 상황과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소리 없이 무너지는 인간관계와 가치관. 《도둑맞곤 못살아》는 단지 도둑과 보험사 직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도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도둑맞곤 못살아》는 웃기지만 슬프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미가 깊은 영화다. 소지섭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과감히 뒤흔들었고, 박상면은 생활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처음 보는 이에게는 가벼운 오락일 수 있지만, 지금 다시 본다면 그 안에 숨겨진 시대의 초상과 인간의 민낯이 보인다. 만약 지금 현실에 지쳐 있고, 이유 없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면—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웃으며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