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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보는 우리들 (최수인, 설혜인)

by lifetreecore 202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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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2016)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세계를 조명한 독립영화의 진주 같은 작품이다. 윤가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시선을 던진 이 영화는 초등학생들의 우정, 외로움, 경쟁, 배제라는 주제를 섬세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어른들의 시선 없이 오로지 아이들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세계를 재구성한 점에서 매우 독보적이다. 성인이 보기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작품은, 지금 다시 봐야 할 감정의 교과서다.

 

1. “친구가 없어요” — 외로움에서 시작된 한 아이의 여름

주인공 선(최수인)은 초등학교 4학년.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다. 그는 체육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혼자 놀며 ‘왕따’라는 이름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선은 결코 불쌍한 아이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려는 아이다. 그러던 중, 여름방학을 앞두고 전학생 지아(설혜인)가 반에 들어온다. 선은 지아와 빠르게 가까워지며, 생애 처음으로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한다. 함께 공을 차고, 비밀을 나누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만들어가는 여름의 기억은 너무도 따뜻하고 소중하다. 그러나 이 우정은 아주 작은 오해와 타인의 시선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지아가 다른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그 속에서 선은 다시 자신이 외톨이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 감정은 선이 지닌 상처를 자극하고, 결국 질투와 오해로 이어지는 감정의 파열음을 만들어낸다.

2. 윤가은 감독의 시선: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영화

《우리들》의 가장 큰 미덕은 감독의 연출 태도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감정을 설명하거나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들 곁을 따라가며, 카메라를 통해 눈빛, 몸짓, 말 사이의 침묵을 기록한다. 아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싸움이나 사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감정의 변화는 시선의 회피, 말끝의 망설임, 어정쩡한 웃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미묘한 감정의 결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윤 감독은 ‘왕따’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지만, 집단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선과 지아 둘 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감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존재로 그려낸다. 이러한 균형 잡힌 시선은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또한 《우리들》은 가정 환경의 영향력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선은 맞벌이 부모 아래 자라며 부모의 관심을 갈구하고, 지아는 이혼 가정에서 자라며 자신만의 고립된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딘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학교 이야기에서 나아가, 아이들이 처한 사회적 구조까지 아우른다.

3.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감정의 결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감정의 복잡성을 어린아이를 통해 다뤘다는 것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사소한 갈등이나 오해도, 아이들에겐 전부일 수 있다. 윤가은 감독은 이를 절대 단순화하지 않는다. 지아는 처음엔 선에게 의지하지만, 이후 반에서의 생존을 위해 다른 친구들과 가까워진다. 선은 그런 지아를 ‘배신자’로 인식하고, 자신이 소외된다는 불안감 속에서 공격적인 감정을 품는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은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된 방어 기제일 뿐이다. 영화는 끝까지 선과 지아 중 누가 옳았는지,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감정의 얼룩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지만, 아이들은 끝내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려 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 전체의 감정적 축적을 정리하며 강한 울림을 전한다.

《우리들》은 작고 조용한 영화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이 영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빌려, 어른들조차 마주하지 않았던 감정의 뿌리를 꺼내 보게 한다. 우정이란 얼마나 쉽게 생기고 사라지며,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운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다시 보면, 《우리들》은 어린 시절의 나, 혹은 현재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영화다. 조용한 어느 날, 이 영화가 건네는 말 없는 위로를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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