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의 2015년작으로, 단순한 반복 구조를 통해 인간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집요하게 포착한 영화입니다. 같은 하루, 같은 인물, 같은 공간 속에서 단 두 가지 변주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대사와 감정의 결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결과를 이끌어내며, ‘선택’과 ‘관계의 순간’을 되짚게 만듭니다. 지금 다시 보면, 이 영화는 그저 실험적인 구조가 아닌, 인생의 리듬과 가능성을 사유하게 만드는 명상 같은 작품입니다.
같은 상황, 다른 관계: 반복 구조의 영화적 실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구조적으로 두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재영이 연기한 영화감독 '함춘수'가 지방 강연을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화가 '윤희정'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두 이야기는 등장인물, 시간, 장소, 상황이 거의 동일하지만, 주인공의 태도, 대화의 방식, 감정의 밀도 등 아주 미세한 차이가 인물들의 운명을 전혀 다르게 만듭니다. 홍상수 감독은 이 실험을 통해 ‘똑같은 하루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함춘수가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관계가 어긋나고, 두 번째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진심이 스며들면서 관계가 열린 채로 마무리됩니다. 관객은 두 챕터를 비교하며,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살피게 됩니다. 이 반복 구조는 홍상수 영화의 상징과도 같지만, 이 영화에서는 특히 직조 방식이 더 깔끔하고 명료합니다. 구조적 실험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데 성공했기에, 많은 관객들에게 그의 영화 중 ‘입문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정재영과 김민희의 리얼한 호흡
영화의 중심에는 정재영과 김민희, 두 배우의 리얼리티가 있습니다. 특히 정재영은 ‘진심을 가장한 허세’, ‘관심을 가장한 자기 과시’ 등 복합적인 감정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연기해냅니다.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이 대체로 감정의 파고를 크지 않게 표현하는 만큼, 정재영의 미묘한 말투 변화와 눈빛이 영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김민희 역시 이 영화에서 단순한 ‘뮤즈’ 역할을 넘어섭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상대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관계의 흐름을 주도합니다. 특히 두 번째 챕터에서 보이는 감정의 열림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닌, 타인을 진심으로 바라보게 된 순간의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두 배우의 호흡은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그 속에 쌓이는 감정의 결은 매우 풍부합니다. 이 절제와 긴장, 미세한 진심의 교차가 이 영화의 정서적 밀도를 결정짓습니다.
일상 속 가능성의 변주를 말하는 연출
홍상수 감독의 연출은 최소한의 기술로 최대한의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고정된 카메라, 줌인과 줌아웃을 중심으로 한 장면 구성,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 일상적 대화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 등 그의 ‘기술적 단순함’은 영화의 본질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는 특히 편집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같은 하루’를 두 번 반복하면서도, 리듬을 의도적으로 달리 설계합니다. 첫 번째는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이 흐르고, 두 번째는 보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전개됩니다. 관객은 동일한 장면을 통해 ‘어떤 대사가 달라졌는가’, ‘감정의 방향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의 본질을 사유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무엇이 달랐나’를 찾는 게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선택이 인생의 어떤 장면을 바꿀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증명하는 철학적 텍스트에 가깝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이 영화는 코로나 이후 인간관계와 일상의 반복성에 지친 현대인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구조적 실험과 현실적 감정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선택의 가능성과 감정의 진심을 조명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영화 창작자뿐 아니라 모든 현대인에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주말에 여유가 있다면, 이 영화를 조용히 다시 감상해보세요. 당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관계의 조각이 얼마나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입니다.